2025. 3. 18. 14:39ㆍ드론영상
눈 속의 암자길, 지리산에서 마주한 고요한 하루
지리산 7암자길을 걷기 위해 겨울 산행을 준비했다. 계절이 조금 일렀지만, 마음만은 이미 그 고요한 암자와 설경을 향해 있었다. 여행을 위해 예약해둔 지리산 자연휴양림, 그곳에서 머물며 몇 곳의 사찰을 찾아볼 계획이었다.
출발하기 전, 휴양림 측에서 연락이 왔다. “눈이 많이 왔습니다. 입구 쪽 경사가 심해 차량 이동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경고는 들었지만,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기에 조심히 가보기로 했다.
지리산에 도착하니 예보대로 눈이 내렸다. 밤새 눈이 더 온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지만, 그래도 일단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아늑한 휴양림의 숲 속에서 하얀 눈이 나무 위로 소복이 내려앉는 풍경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다음 날,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차를 빼려 했지만, 입구 쪽 경사가 문제였다. 관리하시는 분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는 여전히 미끄러웠다.
결국 케이블타이처럼 생긴 간이 체인을 장착하고 조심스레 출발했지만, 반쯤 내려왔을 무렵부터는 제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운이 좋게도 마주오는 차량이 없어 사고 없이 멈출 수 있었지만, 체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애초에 계획했던 7암자길은 눈으로 인해 어렵게 되었고, 유일하게 진입이 가능한 약수암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가는 길에 들른 곳은 실상사. 지리산 북쪽, 남원 인월면에 위치한 이 고찰은 고려 시대의 고요한 숨결을 간직한 사찰이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평지 위에 넓게 펼쳐진 사찰의 독특한 배치에 감탄하게 된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물은 철제 여래좌상으로, 고려 시대의 뛰어난 불상 조형미를 보여준다.
실상사를 잠시 둘러보고 다시 차를 타고 약수암으로 향했다. 약수암으로 가는 길은 임도로 되어 있어 평소에는 차량 접근도 가능한 길이지만, 오늘은 깊게 쌓인 눈으로 인해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발아래 깔렸고,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눈길이 주는 피로감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건 ‘조용함’이었다.
약수암은 이름처럼 맑고 깊은 느낌을 주는 암자다. 산 중턱에 조용히 자리한 이 암자는 마치 세상의 소음을 모두 걸러낸 듯, 고요하고 따뜻했다. 하얗게 덮인 암자 마당, 대웅전 앞에 놓인 눈 쌓인 의자, 그리고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아도, 모든 것이 나지막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순간이었다.
비록 7암자길을 모두 밟지는 못했지만, 실상사와 약수암이라는 깊은 울림을 주는 두 사찰을 만난 하루였다. 눈길 위에서 미끄러졌던 아침조차, 이 조용한 암자 앞에서는 무의미한 고생처럼 느껴졌다. 지리산은 늘 그렇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마음을 다해 위로해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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