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5. 14:53ㆍ드론영상
황매산, 달빛과 철쭉 사이를 걷다
바람은 말을 아끼고, 산은 빛으로 대답했다.
그곳은 황매산, 철쭉이 산자락을 수놓는 5월의 초입이었다.
해가 지고 난 뒤, 달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직 어둠에 물들기 전의 푸르스름한 시간,
세상은 마치 깊은 숨을 들이쉬는 듯 고요했다.
그 틈을 따라 걸었다.
돌무더기 위에 앉아 잠시 쉬려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수줍게 떠오른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붉은 융단 같았던 철쭉은
가까이서 보면 가지마다 서로 부딪히며 피어오른 작은 생들이었다.
그 수많은 생들이 모여 만들어 낸 보랏빛 물결은
낮 동안 빛에 취한 풍경을 품고, 저녁이 되어 더 깊어졌다.
우리는 결국,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스쳐가는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니까요.
그리고 어느 봄날, 지는 철쭉이 가장 아름다웠다는 것을 기억하겠죠.
해가 점점 더 기울고, 산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노을은 붉게 물들었고, 철쭉의 연분홍과 진분홍 빛은 서서히 주황빛과 섞이더니
어느새 차분한 자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색도 변했습니다.
푸르던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옅어졌고,
서쪽은 붉고, 동쪽은 차분한 푸름 속에 달이 떠올랐습니다.
황매산 능선 뒤편, 막 고개를 든 달은
마치 조용히 지켜보는 관객 같았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철쭉이 어우러진 무대 위에서,
그는 소리 없이 떠올라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한동안 드론의 조종기를 놓고 서 있었습니다.
굳이 찍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카메라에 담기보다, 마음에 담아야 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황매산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나는 그 하루의 끝을 조금 늦게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은 살짝 차가워졌고, 철쭉 군락지에는 하나둘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 하늘은 더 많은 색을 보여주고 있었죠.
주황, 분홍, 보라, 남색, 그리고 짙은 남색 위에 떠 있는 달빛.
그 풍경은 그날 황매산이 준비한, 마지막이자 가장 조용한 감동이었습니다.
드론이 내려오는 동안, 나는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끝내기 싫어서,
조금만 더, 이 여운을 붙잡고 싶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그 밤의 잔잔한 감정이 닿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 황매산은 환한 낮의 철쭉일 수도,
어두워진 저녁 하늘 아래 떠오른 달빛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결국
‘지나갔기에 더 깊이 남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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